도스또예프스키가 24살에 집필, 다음해인 1846년에 발표해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맨 뒤에 옮긴이의 작품설명을 보면 고골과 당시 유행했던 소설의 특징 등을 알아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나보다. (고골과 푸쉬킨의 소설은 도스또옙스키의 소설에서 자주 언급된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낡아빠진 서한체 연애 소설을 문학에 관한 진지한 담론으로 변형시킨 진정한 천재성을 이미 이때부터 보여줬던" 작품이란다. 근데 왜 나는 뒷부분이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낡아빠진 서한체 연애 소설만은 아님이 분명하지만, 사실 난 이 작품에서 도스또옙스키의 천재성을 느낄 만큼 감명을 받진 못했다. 아무래도 처녀작이다 보니 말년에 쓴 작품인『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비하면 작품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날 수밖에 없다. 그..
도스또예프스키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의 소유자다. 차근히 시간이 되는 대로 그의 작품을 한 권씩 읽어나갈 계획이다. 되도록이면 순차적으로 읽기로 한다. 실력이 미천하여 번역본을 비교해본다든가 러시아어로 된 원서를 줄줄줄 읽는다든가 하는 것들은 못한다. (언어에 다재다능한 사람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그저 지금껏 해오던 대로 개인적인 감상평을 남길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들(Бедные люди), 1846분신(Двойник: Петербургская поэма), 1846네또츠까 네즈바노바(Неточка Незванова), 1849아저씨의 꿈(Дядюшкин сон), 1859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Село Степанчиково и его обитатели), 1859상처받은 사람들(Унижен..
난 원래 만화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로지 움직이는 만화, 애니메니션만 좋아라 할 뿐이다. 이건 작정하고 지른 만화책이다. 만화책 구입은 이번이 두번째다. 전에 샀던 건 중학교 동창이 낸 첫 작품이었으니, 나와 관계없는 작가의 만화책을 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볼 일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걸 살 생각을 했을까. 의외의 만남은 대학교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3층 900번 역사 쪽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었던 이 녀석. 넌 대체 뭐란 말이냐? 먼나라 이웃나라 뭐시기 같은 것도 아닌 주제에 900번대라니? 아무리봐도 그냥 평범한 만화책이었다. 제목이 좀 역사삘이 난다는 것 뿐.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당시 내가 알렉산드로스에 열광할 때라(지금도 좋아라..) "알렉산더의 개인 서기관이었던..
사람은 누구나 집단적이면서 동시에 개인적이다. 시기마다 지역마다 사회 내에서 그것이 표출되는 비율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순수하게 집단적인 것과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을 구분하여 도식화한다는 것도 인간사회의 특성상 어려운 일이다.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개인-"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내게 이 책의 겉표지에 쓰여있는 "집단주의와 개인성의 이상한 조합"이란 문구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조합의 성립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그 형태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저자의 의견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자 쪽이었다. 그러나 현대 일본사회에서 그 부자연스러운 형태가 서구인들의 보편적인 인식처럼 비정상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살펴봤을..
5월 초에 군산에 여행갈 일이 있었는데, 지나가다 채만식문학관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읽어보라던 『탁류』가 떠올라 구매를 해놨었다. 별 생각없이 앞에 해설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헐 이건 뭐지? 채만식도 친일행위라니..(나만 몰랐나?;;) 엮은이 공종구씨는 채만식이 "해방 직후 적지 않은 문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 행적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성찰 없이 목전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권력 투쟁에 골몰하던 현실에 환멸의 비애만을 경험하며 낙향"(11ㅉ)했다고 한다.(맨 뒤의 작가연보에 그의 친일작품들은 쏙 빼놓은 반면「민족의 죄인」은 기입해놨다) 해방 후에「민족의 죄인」(1948)을 발표하며 자신의 친일행위를 고백,변명했다고는 하지만, 최남선처럼 기막힌 변신을 하지 않았다고 칭찬할 수는 없을 ..
광장 6월에는 왠지 『광장』을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수능 모의고사 단골문제였고, 주변의 여럿이 추천해줬던 그 소설. 조금 부끄럽게도 오랫동안 끝끝내 버티다가 지금에서야 읽고 말았다. 요즘은 책 추천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추천하는 책이라고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린왕자』도 절대 안읽겠다고 다짐하다가, 자꾸만 그 책이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르는 바람에 모르는 티 내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적이 있다. 『광장』은 순전히 자발적으로 읽었다. 내용이야 읽기 전부터 익히 알았던 터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이 소설에 대해서는 뒤에 붙어있는 두 편의 해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많이 이야기 돼있는 편이고, 그리 난해할 것도 없어서 따로 써낼 ..
읽은 지 꽤 됐는데 이제야 감상을 올린다. 상당히 얇은 두께에 내용은 알차게 재밌다. 구한말 개화자강파,애국계몽세력의 저항논리를 민족사학의 시각이 아닌 정치사상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술한 책이다. 그들의 저항이라고 하는 것은, 전자의 시각에서 보면-비록 사회진화론과 동양평화론의 이중성에 잘못 넘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지만-기본적으로 민족을 최우선하여 일제에 대항한 것이었고, 후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특정 계급의 이권 수호에 불과한 것이었다. 저자는 그 자유주의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으로, 지금의 신자유주의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민권 사상에 대한 관점이었다. 자유주의의 민권 개념은 "개인들의 재산, 생명, 자유의 보호이며,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