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모두 모아놔서 이 한 권으로 셰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번역본에 비해 굉장히 부드럽고 편안하고 쉬운 문체로 쓰여져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더 깊고 원작과 비슷한 맛을 원한다면, 이 책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현실성이나 이야기의 탄탄함을 염두에 두고 읽기 보다는 표현의 예술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것에 충실한 번역이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쉬운 문체의 번역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셰익스피어의 참맛을 느끼기에는 많이 부족해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셰익스피어를 처음 읽는 사람이..
다른 혁명가들이나 위인들의 평전이나 자서전이 그렇듯 크로포트킨의 자서전도 그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읽는데에는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그 내용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가벼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짧막하고 담백한 문장들은 유려한 필체로 한편의 목가적 소설을 읽는 듯했다. 비록 전문서적이 아닌 자서전이지만, 크로포트킨이 민중을 위했던 그 성격이 그의 필체에서 나타나는 것이 엿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러시아의 차르와 귀족들부터 노동자와 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세히 묘사하여 자서전이 사료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만큼 역사서적으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자서전들과는 다르게 주인공 자신의 개인적인 내적 심리묘사를 한 부분을 찾기가 어려운 것과도 연..
"아나키스트 신채호"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던 중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제목과 같이 한국의 '아나키스트'에 대해서 쓰여있을거라 기대하고 펼쳐들었다. 목차의 굵직한 제목에서도 신채호, 류자명, 박열, 유림, 하기락 이렇게 5명의 한국의 아나키스트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면의 대부분은 한국의 '아나키즘'에 대해서, 특히 역사학자 이호룡의 한국아나키즘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하는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의 삶보다는, 주로 한국의 아나키즘을 바라보는 저자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아나키즘에 관한 통속적인 관념과 이호룡과 존 크럼 등의 의견에 반박하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굳힌다. 일반적인 인물사 나열이었다면 재미없었을지도 모른다. 신채호만 읽어볼까 하다가 결국..
내가 이 책을 처음 만난건 저번 학기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신종플루를 겪고 난 후로 기력이 쇠약해지고 학기 말에는 모든게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틈을 타서 나의 이성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절벽에 있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발 밑의 끝없는 어둠을 보고 만 것이다. 사실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청소년기부터 사색을 할 수 있게 된 후로 몇 번이나 그 고통에 눈을 떠야만 했다. 더욱이 주위 사람들의 죽음을 겪고 난 뒤에는 니힐의 손길이 나를 에워싸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죽으면 다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이성의 이끌림을 받을 때마다 그 종착역은 자살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
메노키오의 재판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의 근원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메노키오의 예가 상류층의 프로테스탄티즘과 하류층의 구전문화가 교류해서 만난 한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메노키오라는 이탈리아 몬테레알레의 한 방앗간 주인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켜 16c 상류계층문화와 하류계층문화 간에 교류가 있었다는 표본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결국에는 현미경식 연구방법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문학적이라고 했듯이 구체적인 사료가 부족한 가운데 빈 부분을 "추측"으로 채워넣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사료도 부족한데 사상적인 측면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폭넓은 지식..
인물발표 준비 때문에 읽어봤던 약산 김원봉. 학교 도서관에 아무리 찾아봐도 김원봉 일대기를 쓴 단행본이 이것 밖에 없길래 읽어봤던 책이다. 김원봉 논문이 그가 활동했던 단체와 관련된 논문 몇편 밖에 없었으므로 한 숨을 쉬고 있던 차에 친구가 권한 책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 평전인 줄 알았다. 겉 껍데기가 없어서 저자의 이력도 모른채 그냥 읽어갔다.(나중에 알고보니 국문학자가 쓴 것이었다) 읽다보니 뭔가 수상했다. 어디서 인용했다는 각주도 없고, 구성은 소설과 다르지 않았다. 점점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만둘까하다가 김원봉과 관련된 텍스트도 별로 없고, 이왕 손댄거 후루룩 끝내버리자고 끝까지 읽긴 했다. 김원봉이 대단한 사람이긴 했지만 온통 좋은 말만 다 써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김구와 임시정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