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국토 대장정을 했던 2007년의 뜨거운 여름을 떠올렸다. 배고프면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꺼내 먹으면 되고, 졸리면 누워서 자면 되고, 더우면 에어컨을 켜면 되고, 심심하면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 되는 편안한 대학교 여름 방학의 생활을 등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덥고 습한 거리를 매일 수십 km씩 걷기 시작했던 그 해 여름. 밥 먹는 시간 1시간, 자는 시간 6~7시간, 씻는 시간 10~15분, 자기 전 다른 지기들과 잡담하며 발의 물집을 치료하는 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지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일 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힘들어도 걸으면서 생각하다보면 목적을 달성할 ..
추석 연휴 5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붙잡고 읽어서 겨우 끝낼 수 있었다. 내용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분량이 워낙 많고 인명/지명이 익숙치 않아 오래걸릴 수밖에 없었다. 투퀴디데스는 아테나이-아테나이 동맹국과 스파르테(라케다이몬)-스파르테 동맹국 간의 지리멸렬한 전쟁을 연대기 순으로 작성했다. 이 이야기는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411년에서 갑자기 끊긴다. 즉, 미완인 책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431년~404년까지다.) 중간중간 투퀴디데스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기술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전쟁과 관련한 사실들의 나열이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는 이유는 긴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전투 묘사와 전쟁터에서 장군들의 연설, 각국의 사절단들이 오가며 쏟아내..
참으로 오랜만에 책리뷰를 쓴다. 그동안 책을 계속 읽긴 했으나 왠지 모르게 블로그에 손이 가지 않았다. 간만에 올리는 리뷰는 그 유명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이다. 맨부커 상을 받았다고 해서 한동안 언론에서 떠들썩했었다. 사실 그래서 읽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을 받았거나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들은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딱 하나다. "나의 외사친"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의 외딴 마을에 사는 어떤 외국인이 한국의 한강을 안다며 채식주의자를 읽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언급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정작 한국인인 내가 거기에 공감할 수 없음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오랜만에 들른 오프라인 서점에서 망설임없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골랐고, 작고 ..
러시아 여행을 앞두고 가이드북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미술사에 관심은 높지만 여지껏 보아왔던 서양미술사 관련한 책들에서는 러시아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여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뻬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에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미술사를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의무감보다는 '기껏해야 변변찮은 종교회화가 걸려있거나, 수집하거나 약탈한 서유럽 화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겠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한 마디로 그냥 무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와 리뷰들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속는 셈치고 읽어보자 하고 펼쳐든 책에서 기대 이상의 놀라움과 감명을 받았다. 러시아는 문학과 음악은 뛰어나지만 미술은 그닥 ..
기존에 하서 출판사에서 나온 『죄와 벌』 단행본을 갖고 있지만, 열린책들 디자인과 번역을 너무나 좋아해서 같은 작품을 또 구입했다.(그만큼 죄와 벌이 좋았다.) 하서에서 나온 것은 단권으로, 열린책들에서 나온 것은 상하권으로 돼있다.책 크기도 좀 차이가 난다. 둘의 첫 장 번역 비교.위가 홍대화가 옮긴 열린책들의 죄와 벌이고, 아래가 유성인이 옮긴 하서의 죄와 벌이다.대체로 내용은 같으나 구체적으로 단어 선택이나 설명하는 강도의 차이 등에서 미세하게 다른 느낌이다.어느 것이 더 좋다 할 필요없이 개인적으로는 둘다 괜찮았다. 지난 포스팅을 검색해보니 내가 죄와 벌 감상문을 올린 날이 2011년 12월 13일이었다. http://zero-gravity.tistory.com/43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처..
무려 2년 반 전에 구입했던 책을(http://zero-gravity.tistory.com/201) 이제야 펼쳐봤다. 두껍고 진득거려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이런 종류의 책은 명절 연휴에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추석 연휴는 지루하고/머리 아프고/글자들을 삼키기가 버겁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야할 혹은 읽고나면 뿌듯할 것 같은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작년 추석 연휴에는 집에 서버를 구축하느라 기를 다 빨렸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작년엔 뭐했는지 기억이 안나네;;;)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총 6일, 하루에 1.6권을 읽는다는 계획으로 읽어나갔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4일 반나절에 끝낼 수 있었다. 역시 천병희 씨가 번역한 책은 최고다 ㅠㅠ 어렸을 때, 더럽게 어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