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책을 읽으며 국토 대장정을 했던 2007년의 뜨거운 여름을 떠올렸다. 배고프면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꺼내 먹으면 되고, 졸리면 누워서 자면 되고, 더우면 에어컨을 켜면 되고, 심심하면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 되는 편안한 대학교 여름 방학의 생활을 등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덥고 습한 거리를 매일 수십 km씩 걷기 시작했던 그 해 여름.

 

   밥 먹는 시간 1시간, 자는 시간 6~7시간, 씻는 시간 10~15분, 자기 전 다른 지기들과 잡담하며 발의 물집을 치료하는 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갈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지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일 치고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힘들어도 걸으면서 생각하다보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27박 28일 동안의 걷는 시간이 내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으리라 여겼던 예상은 행진 1~2주 만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먼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내가 처한 상황이 1차원적인 욕구불만의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쉬고 싶다!', '물이 마시고 싶다!', '무언가 먹고 싶다!', '누워서 자고 싶다!', '에어컨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고 싶다!', '시간제한 없이 마음껏 씻고 싶다!'... ... 걷는 동안 내 머릿속을 차지한 건 이런 단순한 생각들이었다.

 

   걷기 시작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숙소로 머물고 있었던 학교의 공중전화에 100원짜리 동전을 찰캉찰캉 집어넣고 번호를 눌렀다. 뚜우-- 뚜우-- 신호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됐다. "어- 엄마... ..." 나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뭘 잘못 먹었는지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벌써 15년이 지났는데도 그때를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목이 메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아마도 언젠가는 엄마와 이별해야 한다는 자연 불변의 진리가 떠올라서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그 긴 걸음의 시간으로 얻은 깨달음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도, 구체적인 삶의 설계도 아닌 "감사함"이었다. 그토록 무겁고 뜨거운 단어일 줄 몰랐던 "엄마"를 부를 수 있음에 감사했다. 돌아갈 아늑한 집이 있음에 감사했다. 항상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소중함에 감사했다.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뒷 세대에서 종말을 고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지구의 소중함을 느끼고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기 쉽지 않다. 나 또한 고해성사를 하면 부끄러울 것들이 잔뜩이다. 어떻게 하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감사함"을 깨닫고 행동에 나서도록 할 수 있을까. 78억명에 달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지구 대장정"에 참여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분명한 것은 엄마와 언젠가 헤어질 것이란 사실에 체념하기보다 주어진 시간을 가치있게 보내는 것이 낫고, 우리가 모조리 죽고 우리의 자식들도 언젠가 전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주어진 삶을 나와 우리를 위해 작은 실천이라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은 선택이란 점이다. 왜냐면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7년 뜨거운 여름, 국토지기 9기 완주 단체샷. (27박 28일, 787km)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