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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역사를 전공하고 이제 막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기 시작한 초보 개발자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첫 월급을 타고, 서울에 가서 친구를 만나 이것저것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면서 참 많은 생각과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흔히들 3D라고 부르는 개발자라는 직업은 연장 근무/야근/주말 근무 수당이라곤 하나도 없는...(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렇다고들 한다.) 노조도 없고,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불쌍한 직업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IT쪽은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도 손 들고 도망갈 정도로 근무 환경이 열악해서 취업 걱정은 필요없는 분야다.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상관없이 대략 6개월 동안 대학 전공 수업보다 더 힘들게 수업을 듣고나면 초급 개발자로 취업이 가능하다. 나 또한 그 길을 가고 있다.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각종 언론매체, 주위 사람들로부터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좋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택한 이유는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다. 文과 理의 경계에서 서서 그 둘을 엮어 공공과 나 자신을 위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길이 굉장히 험난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각오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회사 사람들과 다같이 서울에 갈 일이 있었다. 오후 3시쯤에 일정을 마치고 나를 제외한 회사 사람들은 곧장 버스를 타고 내려가기 바빴다.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쉬기 위해서였다. 나 또한 일찍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뭐 하나 즐기지도 못하고 내려간다는 게 너무 아까웠기에 스트레스를 피곤과 맞바꾸는 것을 택했다. (어쩌면 갓 부화한 터라 아직 피곤이 덜 쌓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요즘 나의 휴일 생활에서 스트레스와 피곤은 반비례 관계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피곤하다. 피로를 풀기 위해 집에 박혀있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도 전시회 보고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올릴 수 있었고, 자기 계발에 확실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슬픈 것은, 이런 여가 생활을 앞으로는 점점 더 즐길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주말이 가까워오면 '이번 토요일은 무사히 쉴 수 있을까?', '토요일에 일을 하게 되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최대한 스트레스는 받지 말아야겠다..'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주말 이틀을 온전히 쉴 수 있는 아름다운 주말이 막상 닥치면 좋아하던 사진촬영은 커녕 집 밖에 나가기도 싫은 게 현실이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 밖엔 없다.


   이 직업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필요로 한다. 일하면서 배우는 게 많기도 하지만 일하면서 배우는 것들은 기술적인 것들 뿐이다. 평일 연장근무, 야근, 주말 근무.. 개같이 일하면서 훌륭한 코더는 될 수 있어도, 무료 봉사와 같은 초과 근무를 밥먹듯이 하면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불꽃 튀는 열정을 가진 개발자로 거듭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용자 측도 말 잘듣고 기계 부품처럼 일하며 회사의 수익을 올려주는 근로자를 원하지, 그들이 근로기준법을 지켜가며 남는 시간으로 어떤 특별한 소양을 쌓아서 사회의 무궁무진한 발전을 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아마 다들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3년/5년 후 높은 임금을 바라보면서 당장의 삶의 즐거움은 유보한 채, 오늘도 내일도 키보드를 두들기는 그런 삶..  또다른 고3 수험생활의 시작이다. 다만 다른 것은 약간의 연봉을 받는다는 것 정도?


   따라가는 삶을 살 것인가, 개척하는 삶을 살 것인가. 조금 슬프고 고단한 길이지만, 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선 초심을 잃지 않고 내 길을 가는 수밖엔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현실을 탓하면서 당장 바꾸려는 생각은 않코 그저 주어진 현실에서 먼 훗날의 행복을 바라는 내 자신이 이기적인 것 같아 부끄럽지만... 딱히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두서없는 단상이었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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