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여행을 갔다와서 뒷북을 잘 친다. 전공 때문에 사전에 공부하고 답사하는 것이 지겹도록 몸에 배어서 여행을 할 때 만큼은 계획없이 떠나는걸 즐겨한다. 그러다보니 여행을 마치고 나서 나중에 그곳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번의 경우가 그랬다. 이 책을 읽지만 않았어도...!!! 여행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은 전혀 아니다. 3박 4일 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계획없이 갔어도 나름대로 굉장히 알차게 돌아봤다고 자부했다. 제주는 한마디로 "최고"였다! 아름다운 곳도 많이 가봤고,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다.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하. 지. 만.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젠장!!!!! 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머리를 쥐어뜯을 수밖에..
다른 혁명가들이나 위인들의 평전이나 자서전이 그렇듯 크로포트킨의 자서전도 그 두께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읽는데에는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그 내용이 무겁지는 않았지만 가벼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짧막하고 담백한 문장들은 유려한 필체로 한편의 목가적 소설을 읽는 듯했다. 비록 전문서적이 아닌 자서전이지만, 크로포트킨이 민중을 위했던 그 성격이 그의 필체에서 나타나는 것이 엿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과 러시아의 차르와 귀족들부터 노동자와 농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상세히 묘사하여 자서전이 사료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만큼 역사서적으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자서전들과는 다르게 주인공 자신의 개인적인 내적 심리묘사를 한 부분을 찾기가 어려운 것과도 연..
"아나키스트 신채호"에 관한 발표를 준비하던 중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제목과 같이 한국의 '아나키스트'에 대해서 쓰여있을거라 기대하고 펼쳐들었다. 목차의 굵직한 제목에서도 신채호, 류자명, 박열, 유림, 하기락 이렇게 5명의 한국의 아나키스트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면의 대부분은 한국의 '아나키즘'에 대해서, 특히 역사학자 이호룡의 한국아나키즘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판하는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의 삶보다는, 주로 한국의 아나키즘을 바라보는 저자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아나키즘에 관한 통속적인 관념과 이호룡과 존 크럼 등의 의견에 반박하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굳힌다. 일반적인 인물사 나열이었다면 재미없었을지도 모른다. 신채호만 읽어볼까 하다가 결국..
메노키오의 재판 기록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의 근원을 추적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메노키오의 예가 상류층의 프로테스탄티즘과 하류층의 구전문화가 교류해서 만난 한 전형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메노키오라는 이탈리아 몬테레알레의 한 방앗간 주인을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켜 16c 상류계층문화와 하류계층문화 간에 교류가 있었다는 표본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결국에는 현미경식 연구방법으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문학적이라고 했듯이 구체적인 사료가 부족한 가운데 빈 부분을 "추측"으로 채워넣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사료도 부족한데 사상적인 측면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기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폭넓은 지식..
인물발표 준비 때문에 읽어봤던 약산 김원봉. 학교 도서관에 아무리 찾아봐도 김원봉 일대기를 쓴 단행본이 이것 밖에 없길래 읽어봤던 책이다. 김원봉 논문이 그가 활동했던 단체와 관련된 논문 몇편 밖에 없었으므로 한 숨을 쉬고 있던 차에 친구가 권한 책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 평전인 줄 알았다. 겉 껍데기가 없어서 저자의 이력도 모른채 그냥 읽어갔다.(나중에 알고보니 국문학자가 쓴 것이었다) 읽다보니 뭔가 수상했다. 어디서 인용했다는 각주도 없고, 구성은 소설과 다르지 않았다. 점점 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만둘까하다가 김원봉과 관련된 텍스트도 별로 없고, 이왕 손댄거 후루룩 끝내버리자고 끝까지 읽긴 했다. 김원봉이 대단한 사람이긴 했지만 온통 좋은 말만 다 써있었다. 그리고 저자의 김구와 임시정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