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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옙스끼가 좋아한 러시아 작가가 두 명 있다. 뿌쉬낀과 고골. 이 사람들의 작품이 그의 소설에 여러번 인용된 적이 있어서, 언젠가는 한번 이들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둘중에선 고골의 작품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 전집에는 뿌쉬낀의 작품밖에 없었기에 먼저 손을 댄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중심 주제는 오네긴과 따찌야나 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오네긴-따지야나, 렌스끼(오네긴의 친구인 시인)-올가(따지야나의 친동생) 이렇게 짝지어진다. 렌스끼로 통해 표현되는 짙은 낭만주의 색채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고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어찌보면 구닥다리 같기도 하지만 구식 표현이라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멋진 글들이 많다. 운문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부터 독특했고, 스토리보다 작가의 잡담과 곁다리로 빠지는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신선했다. 읽다가 '뭐야 이야기는 언제 전개되는 거지?' 하다가도 사랑, 청춘, 문학비평, 러시아 등에 대한 표현을 보면 자연스레 감탄을 하게 된다. 왜 이 사람이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살아오면서 명상에 잠겨 본 사람이라면
마음속 깊이 인간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고
느낌이 있는 사람이라면
되돌아오지 않는 세월의 환영에 전율하기 마련.
- 제1장 46.
사랑이 지나가자 뮤즈가 등장했다.
흐려졌던 지성은 맑아지고
자유로운 나는 또다시 찾는다
마술 같은 소리와 감정과 상념의 결합을.
시를 써도 가슴은 미어지지 않고
펜은 자기도 모르게
쓰다만 시의 여백에
여인의 발이니 얼굴이니 그리지도 않는다.
재만 남은 불은 다시 타오르지 않고
나는 여전히 슬퍼하지만 눈물은 이미 말랐다.
- 제1장 59.
우리도 한때
하늘의 등불인 달에게
초저녁 어둠 속을 거닐며 눈물과 함께
비밀스런 고통의 환희를 고백했었지... ... .
그러나 지금은 저 달도
희미한 가로등의 대용품에 불과하다.
- 제2장 22.
습관은 하늘이 준 선물,
행복을 대신해주는 것.
---> 각주: 뿌쉬낀의 원주에는 다음과 같은 샤토브리앙의 프랑스어 구절이 적혀있다. <만약에 내가 아직도 행복이란 걸 믿을 만큼 무분별하다면 나는 그것을 습관 속에서 찾겠다.>
- 제2장 31.
아! 사람들은 인생의 밭고랑에서
비밀스런 신의 섭리에 따라
순간적인 추곡처럼
싹트고 여물고 시들어 가고
그 뒤를 또 다른 이들이 좇아간다... ... .
그렇게 우리 덧없는 종족들은
자라나고 요동치고 들끓다가
조상들의 무덤으로 모여든다.
우리의 때도 곧 닥쳐오리라.
하여 손자들이 작별의 언사를 하며
세상에서 우리 또한 몰아내리라!
- 제2장 38.
처음에는 희망으로 허영심을 부추기고
그런 뒤엔 의혹으로 마음을 괴롭히다가
질투의 불길로 다시 활기를 넣어준다.
안 그러면 교활한 사랑의 포로는
쾌락에 싫증이 나서 틈만 나면
족쇄를 풀고 달아나려 할테니까.
- 제3장 25.
그런데 우리 북방의 여름은
남쪽 나라 겨울의 캐리커처.
반짝하다가 사라져 버린다는 걸
누구나 알면서 인정하기 싫을 뿐.
- 제4장 40.
그래, 나에게 하루의 중턱이 찾아왔다.
분명 나도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쨌든 사이좋게 헤어지자
경박했던 내 청춘이여!
- 제6장 45.
자연은 화려하게 꾸며진 번제물처럼
새파랗게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다... ... .
먹구름 몰고 온 북풍이
헐떡이며 울부짖는다. 마침내
겨울의 마녀가 등장한 것이다.
- 제7장 29.
사랑의 갈망으로 열에 들떠 괴로워하는 것이,
끊임없이 이성으로 끓는 피를 억제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당신이 알아주신다면.
당신의 무릎을 얼싸안고
당신 발 아래 엎드려 통곡하며
간원과 고백과 원망,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어하면서도
말투며 시선을
짐짓 꾸민 냉정함으로 무장하고
평온한 대화를 나누며 자못 즐겁다는 듯
당신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끔직한 일인지......!
- 제8장 32.
뿌쉬낀의 이 운문소설을 바탕으로 차이콥스끼가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한다.
원작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잘 반영한 듯.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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