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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카뮈!


   그의 작품을 읽고있노라면, 라울 뒤피의 화사하면서도 아련한 그림들이 떠오른다. 장면과 인물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를 눈으로 따라가다보면 주인공의 인생이 수채화 물감으로 붓질하듯 번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이전 작품들의 아름다운 필체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카뮈는 진정 '인생을 사랑'한 작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바탕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고민"은 아니다. "생각"이라고 해야 한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文과 哲을 잘 버무리고 세련되기까지 한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도스또옙스끼와 카뮈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예기치 않게 마지막 작품이 된 『최초의 인간』이란 작품의 감상평을 하기에 앞서, 잠시 내가 그토록 좋아해 마지않는-그래, 나는 도빠다.-도스또옙스끼와 비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꼭 하고 싶었다. 도스또옙스끼의 문장이 "멈출 수 없는 미칠듯한 헐떡거림"이라면, 카뮈의 문장은 "아끼고 싶은 고급스러움"이다. 도선생이 심리묘사에 능한 나쁜남자라면, 카뮈는 시각묘사를 잘하는 로맨틱남이랄까. 도선생의 문장을 읽을 때면 보드카를 마신 것처럼 취해 어느새 끝에 다다라있는 데에 반해, 카뮈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너무나 유려해서 마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코스 요리를 맛보는 기분이다. 대충 맛보고 그냥 삼키기엔 아까운 문장들이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와는 달리, 카뮈의 작품을 읽을 때면 내 안에서 유독 시기와 질투가 끓어오른다.-당신! 글을 너무 잘 쓰잖아! 고수는 고수를 좋아한다고, 카뮈도 도선생의 작품을 좋아했던 듯하다. 『악령』을 각색하고 연출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시지프 신화』에서도 도선생의 작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 부록2에 쓰여있는 '러시아 대가들'에는 도선생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2차적 의미의 저 순진성을 통하여 고대 그리스 인들의 위대함 혹은 러시아 대가들의 위대함을 찾을 것. 두려워하지 말 것.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 것...... 그렇지만 누가 와서 나를 도와줄 것인가?

- 『최초의 인간』 부록2



   아름다운 조각 모음집, 『최초의 인간』


   『최초의 인간』이란 작품은 카뮈의 마지막 소설이자 미완의 작품이다. 아니, 미완보다는 초고에 가깝다.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자동차를 타지 않고 기차를 탔더라면 이 소설은 카뮈의 일생일대의 대작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짜임새 있게 철저하게 계획한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완보다 초고라고 했던 이유는 레고로 따지면 아래에서부터 차근히 쌓아올라가다가 그만둔 상태가 아닌, 이쪽 저쪽의 자잘한 형태를 만들어놓고 조립설명서만 만들어놓은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글의 중간중간에 각주를 달아 추후에 보완하려고 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쟁이야 항상 있던 건데 뭘. 그러나 사람은 곧 평화에 길이 들지. 그래서 그게 정상인 줄 아는 거야. 아니지, 그건 정상이 아냐, 전쟁이 정상이지>a

a : 발전시킬 것.

- 『최초의 인간』 7. 몽도비: 식민지와 아버지


...(전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내리꽂히곤 하던 제비들이a 처음에는 전차를 마중 가듯이 좀 더 낮게 날면서 복도처럼 좁은 밥아준 거리로 외롭게 나타났다가 단번에 높이 솟아올라 집들 위의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a : 그르니에가 묘사한 알제리의 참새들 참조.

- 『최초의 인간』 1. 중고등학교


   심지어 소설은 주인공인 자크 코르모리의 청소년 이후 이야기부터는 끊겨버리고 만다. 마지막에 들어있는 부록1,2,3에는 카뮈가 작품을 계획했던 잘게 흩어져 있는 문장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을 보면 대략적으로나마 소설의 이야기 순서라든지 앞으로 등장하게 될 인물들과 이후의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으로"다. 어찌보면 누더기 소설 같아보일지도 모르지만, 만들다만 이 작품은 아직 끼워맞추지 못한 조각들마저 아름다워서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이 있다. 한 마디로, 완성됐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 아름다운 조각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카뮈의 이야기


   이 아름다운 조각 모음집 같은 소설은 카뮈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3인칭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인 자크 코르므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마치 1인칭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사하는 밤에 자크가 태어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나서 마흔의 자크가 어머니의 부탁으로 전쟁터에서 죽은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고, 자크는 아버지의 나이가 자신의 나이보다 어린 것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의 묘소에 갔다가 어머니에게 가는 뱃길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남아있는 소설의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알제리에서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카뮈의 자전적 소설이므로 카뮈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동시에 프랑스에서 알제리로 이주했던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가난을 그리는 그의 표현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그들은 동물적으로 삶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삶이란 또한 그 뱃속에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불행을 규칙적으로 낳아 놓곤 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 『최초의 인간』 에티엔


피에르네건 자크네건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언제나 누구보다도 더 관대한 사람들인 이 노동자들이 일자리 문제에 관한 한 언제나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유대인, 아랍인, 그리고 결국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네 일자리를 훔쳐 간다고 욕을 퍼부어 대는 외국인 혐오증 환자들이었다. 프롤레타리아 이론을 내세우는 지식인들에게는 분명 어이없는 태도이겠지만 매우 인간적이고 용서할 만한 것이었다. 이 뜻하지 않은 민족주의자들이 다른 민족주의자들과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대상은 세계나 특권의 지배가 아니라 종속의 특권이었다. 이 동네에 있어서의 노동은 덕목이 아니라 어떤 필연성이었다. 그 필연성은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결국은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었다. 

- 『최초의 인간』 목요일과 방학


그때까지 그는 오직 가난의 풍부함과 즐거움밖에 몰랐었다. 그러나 더위와 권태와 피로는 그에게 가난의 저주를, 끝도 없는 단조로움이 날들을 너무 긴 동시에 너무 짧게 만들어놓는 저 눈물겹도록 멍청한 노동의 저주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 『최초의 인간』 목요일과 방학


그는 항상 죽음처럼 헐벗는 가난의 한가운데서, 보통 명사들 속에서 성장했다. 반면에 삼촌 댁에 가면 고유 명사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 『최초의 인간』 5. 아버지. 그의 죽음. 전쟁. 테러


   소설의 큰 줄기는 아버지를 찾아서, 최초의 인간을 찾아서인데, 어쩌면 그것은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에는 모두 원인이 있듯이, 결과를 정당화시켜주고 뒷받침해주는 원인, 그 최초의 인간을 찾았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장면에서 자크는 삶의 의미가 손에 쥔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경험한다.


완전한 죽음과 맞서 있는 순수한 삶의 열정인 그는,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세월의 물살 위로 그를 들어 올려주었고, 가장 모진 상황들을 만나면 그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도록 자양을 제공해주었던 그 알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삶의 이유들을 부여해 주던 그 지칠 줄 모르고 한결같은 너그러움으로 늙어갈 이유와 반항하지 않고 죽을 이유 또한 그에게 제공하리라는 맹목적인 희망에만 자신을 맡긴 채, 오늘 삶이, 젊음이, 존재들이 어떻게 구해볼 길도 없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최초의 인간』 2. 자신이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나선 그는 아버지의 주변 인물인 어머니, 할머니, 친척들, 아버지의 전우들을 통해 아버지를 복원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제 아무도 그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삼촌도 더이상 죽고 없는 친척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최초의 인간』 에티엔


   대신에 그는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그 자신이 최초의 인간임을 깨닫는다. 나아가 모두가 최초의 인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당장은 아직 소굴도 없었고 다만 빗발치는 포탄들 밑에서 오색의 밀랍 인형들처럼 녹아내리는 아프리카 부대들 뿐이었으며 매일같이 수백 명의 고아들이 알제리의 방방곡곡에서 만들어져 이 아랍인, 프랑스인의 아버지 없는 아들딸들은 그 후 가르침도 유산도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어있었다.

- 『최초의 인간』 5. 아버지. 그의 죽음. 전쟁. 테러


어린 시절의 계속 ─ 그는 어린 시절은 다시 찾지만 아버지는 되찾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최초의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 『최초의 인간』 부록1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서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 『최초의 인간』 7. 몽도비: 식민지와 아버지


   모호해보이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 『이방인』이나 특히 『시지프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읽고나면 "완성되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짙게 베어나오는 그런 소설이다.

   이상하게도 대가들은 죽기 전에 미완의 작품을 남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도선생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그러하고, 맑스의 『자본론』도 미완이었고,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들 중 유난히 덜 완성된 작품이긴 하지만, 길지만 촌스럽지 않은 카뮈의 유려한 문장들을 즐기며 한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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