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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끼(이하 도선생으로 칭함)를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추천한 이 책을 한 권 더 읽어보기로 했다. 휴~ 도선생이 날 순순히 보내주지 않는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지하생활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수기로 적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에 읽었던 도선생의 작품들과는 달리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여졌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은 대개 가볍고 쉽게 읽히지만, 이 작품은 얇은 두께임에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이 책은 제1부 지하실, 제2부 진눈깨비 때문에로 나뉜다. 시간상으로는 2부가 먼저이고 1부가 나중이다. 1부에서는 40대의 지하생활자가 가상의 말벗(신사 양반)을 상대로 철학적 문제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처음부터 내용이 압축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2부에서는 1부의 내용을 20대의 추잡한 경험담을 통해 쉽게 풀어내고 있다.

   이 지하생활자는 책에만 몰두한 나머지 현실세계, 즉 2X2=4라는 이성과 자연의 법칙을 거부하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내면의 심연을 너무 깊게 들여다 본 그는 자의식이 지나치게 넘치는 사람이다. 마치 이런 거다. 난 이런 적이 있다. 차를 운전하는 중에 내리막길에서 빨간불에 섰다. 그런데 바로 앞 차가 디자인이 끝내주는 외제차였다. 정말 엉덩이가 섹시한 자동차였다. 나는 생각한다. '아 브레이크를 떼고 싶다. 오른발만 들면 살짝 부딪히겠지? 그리고 차주인이 내려서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낼 테지. 정말 그렇게 될까. 해볼까 말까' 하지만 난 실행하지 못했다. 그런 행동을 했을 경우, 분명 어이없는 금전적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이성'이 내 자유의지를 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주인공은 정상적인 자연의 법칙을 거부하고 그대로 돌진해버린다. 어느 누가 봐도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저지른다. 그것은 열등감, 자격지심과 결합하면서 자학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로 인해 그는 모종의 쾌감을 얻는다. 그 과정을 도선생은 특유의 심리묘사로 서술한다.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내내 기분 나쁜 불편함과 끈적거리는 듯한 불쾌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주인공의 수기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 작가는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첫 장에 각주로 주인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기의 작가와 <수기> 자체는 물론 생각해 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수기의 작가와 같은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를 형성한 환경들을 고려해 본다면,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9쪽)

   존재했을 법한, 존재해야만 하는 지하생활자의 비정상적인 표본을 통해 인간사회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이성만으로는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거기엔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이론적인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불신도 내포하고 있다.

   인간이 2X2=4라는 자연의 법칙만으로는 살 수 없는 변덕스러운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작가는 탁월한 심리묘사로 그러한 인간의 내면을 파헤침으로써 그것을 분명히 전달하려 했다. 이성에 반대되는 것에 대한 묘사를 통해 인간존재의 다양성을 내보이면서 은근히 사회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한 것이다.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의 행태를 봤을 때, 이상사회의 건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험난한 인생살이를 겪고 나면 이렇게 되는 걸까. 진보는 발전하는 미래를 향한 희망과 믿음이다. 나는 이상사회의 건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지라도, 끊임없이 그곳에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여지껏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속에서는 지상에서 미래를 향한 희망은 없었다. 오로지 천국의 문이 열려 있었을 뿐이다.

   도선생 방식대로 하자면, 내면의 차고 넘치는 자의식으로 돌아버린 지하생활자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은 결국 종교 밖에 없다. 그러나 종교는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이성의 신봉자가 아닌 그 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인지 종교를 통한 구원에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정말 그의 매력적인 글빨은 계속해서 그가 쓴 작품을 찾게 만든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 사람에게 미치도록 열광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내 전공 공부는 커녕, 이 사람의 작품과 관련된 논문을 읽는 데에 시간을 허비했다. 미친 거다. ㅡ_ㅡ;; 그리고 초기작부터 모조리 독파해나갈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허허.. 시간이 될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아.. 괴롭다..

   '이번이 마지막이다!'하고 집어든 책. 아마도 마지막이 되진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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