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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toilet)/- 일상&잡담

아, 냉면!

무중력인간 2015. 8. 23. 01:27

   모기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도 지났고, 여름 막바지인데 난 냉면에 꽂혀있다.


   요즘 새로운 소원이 생겼으니, 바로 제대로 된 전국 3대 냉면을 다 먹어보는 것.


   평양냉면, 함흥냉면, 진주냉면이 그들이다.






   여지껏 먹어본 냉면중에 최고는 단연 진주냉면이었다. 미치도록 맛있었던 진주냉면.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 진주에서 만난 나의 인생냉면이었다.


   담백고소한 육수를 한모금 먹어주고, 쫄깃한 메밀면발에 한우육전/오이/배를 올려서 후루룩 땡기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한그릇 뚝딱 완냉하고나면 "여한이 없다"는 말이 절로나온다. 먹은 지 2주가 지났건만, 자꾸만 생각나는 그 맛은 날 괴롭게 한다.





   먼곳에 있는 진주냉면의 그리움을 달래려 지역 맛집을 찾아갔는데, 50여년 동안 함흥냉면을 만들어 팔고있는 집이었다.


   함흥에서 만난 냉면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함흥냉면이 나랑 잘 안맞아서인지 진주냉면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니었다.


   꼭 제대로 하는 함흥냉면집을 찾아가고 싶다.




   이렇게 전국 3대 냉면중에 먹어본 냉면은 2개. 먹은 기억이 나는 냉면은 2개다.


   평양냉면은 십년 전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먹어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그때는 냉면보다 대동강 맥주에 반해서 아마 기억이 잘 안나는 듯하다.


   '평양냉면도 언젠가는 다시 꼭 먹어보리라!'하며 냉면에 관해 자료를 찾던 중 재밌는 잡지기사를 발견했는데, 바로 평양냉면을 예찬한 기사다.



1929121일 별건곤 제24

사시명물 평양냉면, 진품·명품·천하명식 팔도명식물예찬 김소저(金昭姐)

 

   봄

봄바람이 건듯 불어 잠자든 목단대에 나무마다 닙트고 가지마다 꼿필는 3,4월 기-해를 춘흥에 겨워 즐기다가 지처진 다리를 대동문압 드놉흔 2층루에 실어놋코 패강 풀른물 딸아 종일의 피로를 흘녀보내며 그득 담은 한그릇 냉면에 시장을 맷출 때!

 

   여름

대육적 영향으로 녀름날 열도가 상당히 늡흔 평양에서 더위가 몹시 다를 때 흰 벌덕대접에 주먹갓흔 어름뎅여를 *여 감추고 서리서리 얼킨 냉면! 어름에 더위를 물니치고 개자와 산미에 권태를 떨저버리

 

   가을

수년을 두고 그리든 지기를 패성에 마저다가 능라도 버들사이로 빗치여오는 달빗을 마즈며 흉금을 혜처놋코 고회를 설화할 때 줄기줄기 기-냉면이 물어 끈키 어려움이 그들의 우정을 말하는 듯할 때!

 

   겨울

조선사람이 외국 가서 흔이 그리운 것이 김치 생각이라듯이 평양사람이 타향에 가잇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잇스니 이것은 겨울에 냉면 맛이다. 함박눈이 더벅더벅 나리울 때 방안에는 뱌느질하시며 삼국지를 말슴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래만 고요히 고요히 울니고 잇다. 눈압해 글자 하나가 두흘셋으로으로 보이고 어머니 말소래가 차차 가늘게 들너올 때 국수요--하는 큰 목소래와 갓치 방문을 열고 들여놋는 것은 타레타레 지은 냉면이다. 꽁꽁 어른 김치죽을 뚜르고 살어름이 뜬 진장김치국에다 한저() 두저() 풀어먹고 우루루 떨여서 온돌방 안렛묵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본이요! 상상이 어떳소![각주:1]


   이 사람은 정말 냉면광이었던 것 같다. 사시사철 평양냉면 예찬이라니!


   사실 냉면은 옛부터 여름철 음식인 것 같지만, 겨울철 제철음식이었댄다. 한겨울에 머리띵하게 냉면 먹고 온돌방 아랫목으로 들어가는 맛은 어떨까 참 궁금하다.


   아마도 냉장고가 없던 옛날에 냉면은 겨울에만 만들어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기에 겨울이 제철이라고 했던 것 같다.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0년경 전후)』에는 냉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것을 냉면이라고 한다. 또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썰어 넣고 기름간장을 쳐서 메밀국수에 비빈 것을 골동면(骨董麵) 비빔냉면이라고 한다. 평안도 냉면이 제일이다. 내 생각에는 소동파가 쓴 『구지필기(仇池筆記)』나부(羅浮)의 영노(潁老)가 여러 가지 음식을 얻은 다음 모두 섞어서 끓여 먹었는데 이것을 골동갱(骨董羹)이라고 불렀다.” 고 한 것을 보면 골동이란 여러 가지를를 섞는다는 뜻으로 지금의 비빔냉면과 같다. (중략) 작은 무로 김치를 담근 것을 동치미(冬沈)라고 한다. 곶감을 넣어 끓인 물에 생강과 잣을 넣은 것을 수정과(水正果)라고 한다. 모두 겨울철의 시절음식이다.


   여기서도 평안도 냉면이 제일이라고 하니, 평양냉면이 먹고싶지 않을 수가 없다.


   하기야 우리나라 최초의 냉면집이 1910년대 평양 대동문 앞에 들어섰다고 하니, 평양냉면이 거의 냉면의 원조라고 할 수 있겠다.


   반드시 먹어보리라. 불끈!







   꼬다리> 냉면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헤매다가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2013.09) 에서 "냉면,아지노모도=미미" 부분을 읽고 화학조미료 아지노모도에 대해 알게 됐고, 또 이것에 관해 검색해보니 http://www.minjog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619 이런 재밌는 이야기도 눈에 띈다.



  1.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ma_015_0220_038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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