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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초에 군산에 여행갈 일이 있었는데, 지나가다 채만식문학관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 읽어보라던 『탁류』가 떠올라 구매를 해놨었다. 별 생각없이 앞에 해설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헐 이건 뭐지? 채만식도 친일행위라니..(나만 몰랐나?;;) 엮은이 공종구씨는 채만식이 "해방 직후 적지 않은 문인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 행적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이나 성찰 없이 목전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권력 투쟁에 골몰하던 현실에 환멸의 비애만을 경험하며 낙향"(11ㅉ)했다고 한다.(맨 뒤의 작가연보에 그의 친일작품들은 쏙 빼놓은 반면「민족의 죄인」은 기입해놨다) 해방 후에「민족의 죄인」(1948)을 발표하며 자신의 친일행위를 고백,변명했다고는 하지만, 최남선처럼 기막힌 변신을 하지 않았다고 칭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엔 그가 친일을 했다는 것이 믿기 싫어서 그가 썼다고 하는 10여 편의 친일관련 글들을 뒤져보기도 하고,「민족의 죄인」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것이어서 찝찝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탁류』의 내용을 짧고 굵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주인공 초봉이의 수난사"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해설을 보니 초봉이를 식민지 조선에 대입하여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으면 얼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채만식이 친일적인 글쓰기를 시작하는 시점이『탁류』(1937.08.23~1939.2.19)를 퇴고한 이후인 1940년 10월에『인문평론』의 '사변(事變) 제3주년 기념특집'에 중일전쟁 승리의 감격을 토로한「나의 '꽃과 兵丁'」을 쓰면서부터라고 하고[각주:1], 당연한 얘기겠지만『탁류』에서도 친일적인 색채가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초봉이의 이야기를 조선에 연결시켜 해석하는 것이 그럴듯도 하다. 그러나 저항소설을 썼던 사람이 불과 1년도 채 못되어 갑자기 체제협력자로 돌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나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앗아가는 물질욕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라고 해석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이 소설을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과 막바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하기에도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이 소설에서 가난과 무식으로 인한 비극과 파멸은 보이지만, 그 이상 무얼 더 말하는 것은 없어 보인다. 남승재와 계봉이의 대화에서 가난과 분배의 문제가 살짝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작가의 사상적인 표현이 나타났다고 보기엔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오히려 조선의 가난과 무식 자체를 탓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 어쩌면 시대가 시대인만큼 비극의 원인을 더이상 소급하여 표현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을 놓고 봤을 때는 그저 리얼리즘을 추구한 작품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저항보다는 당시의 세태를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 세태라는 것도 저항/협력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바라보려 한다면 이 소설은 평가 절하 되겠지만, 식민지 조선을 양극으로만 파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적어도 그 정도의 평가는 받을만하다고 본다.



  1. 김형수, 「채만식, 친일협력과 자기비판의 논리」, 人文論叢, 200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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