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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이방인』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반드시 읽게 된다는 『시지프 신화』의 첫문장이다. 『이방인』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카뮈는 이 철학적 에세이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역자 김화영씨는 작품해설에서 소설 『이방인』, 희곡 『칼리굴라』, 에세이 『시지프 신화』 이 세 작품이 카뮈 작품의 첫번째 단계인 '부조리'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희곡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는 궤를 같이하고 있다. 소설을 이해하면 에세이 읽기가 쉽고, 에세이를 이해하면 소설이 깊이있게 다가온다.



   부조리란?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를 물었을 때 이해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부조리'다. 카뮈는 처음부터 "부조리란 ~이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먼저 부조리의 기원을 추적한다. 부조리의 기원은 의식의 활동이 시작되는 곳에 있다. 그 의식이란 무엇인가? 첫째, 시간의 의식이다. 인간은 유한한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죽음의 의식과 연결된다. 경험으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에서 영생은 없으며 누구나 시한부 인생인 것이다. 둘째, 세계의 낯설음의 의식이다. 시간 안에 자신을 위치시켰을 때 느껴지는 무의미함에서 인간은 세계가 낯설어진다. 셋째, 타인과 나 자신의 낯설음의 의식이다. 두번째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의식했을 때, 살아가는 습관에서 탈피하여 멀리서 관조했을 때 나타나는 타인과 나 자신의 낯설음의 의식이다. 부조리의 감정이란 이런 의식의 상태를 말한다. 부조리란 그 의식의 사유 끝에 도달하는 "물 한 모금 없이 황량한 장소"다. 부조리는 정신이 삶의 졸음에서 깨어났을 때 생기는 절연 상태이다. 또한 그것은 명증성을 바랄수록 역설만 낳을 뿐인 모순이다. 카뮈는 말한다. "나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하여 이방인인 나, 긍정하는 즉시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는 사고만이 유일한 구원수단인 나, 이런 내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알기를 거부하고 살기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조건, 정복의 욕구가 솟아오를 때마다 공격을 조롱하는 벽에 부딪치고 마는 맹랑한 조건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바란다는 것, 그것은 곧 온갖 역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38ㅉ)  (의식→명확함에의 열망→사유의 끝, 사막=부조리)



   희망과 자살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으며 삶 속에서 어떠한 목표를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부조리와 맞닥뜨리고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자유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자유의 토대인 '존재'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환상을 먹는 자유의 노예로서의 삶이다. 그렇다면 습관의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졌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희망이나 자살 밖엔 없는 것일까. 여러가지 실존철학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떤 방식으로 논리적 귀결을 이끌어냈는가. 야스퍼스, 하이데거, 키에르케고르, 체스토프, 후설 등은 부조리를 드러내보인 점에서 출발은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비약을 통해 부조리에 동의함으로써, 사유가 사유 그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문제의 본질에서 회피했다. 희망은 현실적인 사유를 벗어나서 부조리의 성립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답이 될 수 없다. (희망=비합리=굴욕의 사유=철학적 자살=종교적인 사유=인간이성의 부정=통일) 중요한 것은 부조리를 은폐하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면한 상태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혹은 자살해야만 하는가를 알아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자살 뿐인가? 그것도 아니다. 자살 또한 희망과 마찬가지로 부조리를 해소해버린다. 부조리는 죽음의 의식과 거부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죽더라도 화해하지 않고 죽는 것이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죽는 것은 아니다"(85ㅉ)



   반항, 자유, 열정 - 부조리의 인간


   카뮈의 귀결은 희망도 자살도 아닌 반항이다. "반항은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의식의 긴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반항은 희망과 자살의 거부다. 죽음을 의식하면 삶의 가치는 높아진다. 같은 전제에서 결과는 뒤집어진다.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시한부의 자유와 미래가 없는 반항과 소멸하고야 말 의식을 확신하는 그는 자신이 살아있는 시간 속에서 모험을 추구한다"(101ㅉ) 반항과 자유의 삶이란 삶의 모든 조건들을 남김없이 소진해버리는 열정 가득한 삶이다. 인간적 사유를 벗어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논리적 귀결은 반항, 자유, 열정이다. 그것을 행하는 인간은 부조리의 인간이다.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 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그 실례를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신경질이 났다. 결론을 도출하기 전단계의 말이 너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속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말 더럽게 많네 진짜. 빨리 결론만 말하라고!!!' 그런데 인내를 갖고 읽고나니 역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었다. 복잡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정리하는 그의 능력이 샘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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