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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미술시간의 기억


   학창시절에 난 미술시간이 싫었던 학생이었다. 준비물을 챙겨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매주 토요일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싫었다. 딱히 집안이 가난해서는 아니었고, 그냥 뭔가 부모님께 기댄다는 게 마음이 찜찜했다. 어렸을 때 뭐 사달라고 조른 적은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대개는 의식주에 관한 한 부모님께서 알아서 해주셨기에 부족함을 느껴도 거기에 만족하는 편이었다. 결국엔 수행평가의 벼랑 끝으로 몰릴 때에야 하는 수 없이 돈을 얻어서 재료를 사가곤 했는데, 결과물은 언제나 최악이었다.


   그 때 나는 그림을 왜 그려야 하는지 몰랐다. 어짜피 사진으로 찍으면 되는데 왜 힘들게 베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미술에 소질이 없던 나는 그림 실력이 엉망이었다. 그래서 미술선생님들은 늘 나를 싫어하셨다. 하긴 좋아하셨을 리가 없다. 매주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오지 않는 애가 그림도 그지같이 그리니까 말이다.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짜피 카메라로 찍으면 되는데..'하는 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그 말을 했더라면 매 맞았을 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지각하고나서 "수업은 9시에 시작하는데 왜 8시 30분까지 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정중하게 말했을 때 북채로 손바닥을 세게 맞았던 적이 있다. 그 기억 때문에 미술시간에 섣불리 내 속마음을 발설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림을 더럽게 못그렸던 나는 과목평균을 미술점수로 다 깎아먹었다. 미술은 실기가 100점 만점에서 70점~80점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중학교 때부터 사진촬영을 즐기게 된 이유다. 아 간혹 A+를 맞은 적도 있긴 하다. 중학교 때 추상만들기를 했는데, 네모난 빨간상자에 요구르트병 4개를 모서리에 놓고 점토,철사,색종이로 만든 것이었다. 제목은 아마 "열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 미술선생님께서는 매번 C,D,F를 맞는 내가 불쌍해보였던지 내 작품을 앞에 놓고 온갖 관념적인 미사여구로 칭찬하시면서 A+를 주셨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미술사 교육의 필요성


   그 분들은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미술시간은 1~2번의 이론수업을 빼놓고 언제나 실기시간이었다. 서양미술사 관련 책들을 읽은 지금에와서 생각하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커리큘럼이다.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미술사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니, 의무교육을 마쳐도 미술작품을 보는 안목이 없다. 심지어 미술교과서는 전과목 중에 제일 얇다. 현대미술이야 현대철학과 결부돼서 어렵다 치더라도, 고전예술은 흐름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동양미술사는 아예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그저 실기시간에 난이나 대나무 몇 번 그리게 하는 게 전부다. 미술시간에 실기만 하는 이유가 뭔가? 혹시라도 아이들 중에서 생길 미술작가에 대한 기대 때문인가? 정말 실기만 해서 미술작가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브루넬레스키가 고안한 원근법이 없었더라면 마사초의 삼위일체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세잔이 없었다면 피카소와 브라크도 없었을 것이다. 앞선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 채 갑자기 창의력이 불꽃튀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더군다나 '왜 그런지'를 설명하기보다 윽박지르거나 체벌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미술 실기시간의 영향으로 작가의 탄생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목표는?


   이쯤되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실기만 주구장창 하는 걸 보면 예술작품을 감상/비평하는 능력을 가진 건전한 시민을 키우는 데에 목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역사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기초적인 암기가 필요하듯이 미술에서도 창의력을 발휘하기 전에 기초적인 실기능력을 쌓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술시간에 선 그리기와 채색하기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미술교사는 아이들에게 시켜놓고 방관만 할 뿐이다.(설마 내 경험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 미술은 수학능력시험에 포함되지 않으니, 대학입시를 위한 교육도 아닐 것이다. 미술학과로 진학할 애들은 학교수업을 빠져가며 학원에 가서 조상을 갖다놓고 똑같이 베껴내는 데 바쁘다. 따지고 보면 이도 저도 아니다. 이름 좀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 해외 유학파인 것도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짜내고 짜내 생각할 수 있는 우리나라 미술교육의 목표는 미술치료나 지능발달 외엔 없다. 미술 공교육에서 그 이상으로는 눈꼽만큼도 나아가지 못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안 제시


   이렇게 학교에서 실기교육을 학원만큼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론교육에 충실하는 편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말하는 이론교육이란 미술사 전반에 대한 이해와 작품을 놓고 감상/토론하는 교육을 말한다. 이런 교육은 굉장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실 창의력을 억압하는 기제가 넘쳐흐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큰 기대를 할 수는 없겠지만, 시도를 아예 안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전공자가 본다면 비전공자가 이렇다 저렇다 지껄이는 게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짧은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학창시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어짜피 제대로 못할 바에야 미술교육에서 실기를 포기하라는 건 공교육을 사교육에 내주자는 것이냐? 현실적으로 입시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학교에서 미술 입시교육을 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미술시간에 미술학과에 진학할 아이들만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미술시간에는 어정쩡한 실기교육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미술이 실기가 전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교육의 목표가 기술적인 교육보다 인격의 고양과 심성의 계발에 있다고 한다면, 또한 현시대 혹은 미래에 필요로 하는 인재상이 창의적인 인재라 한다면, 미술교육에서 앞서 말했던 것처럼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내 주제넘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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