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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난 전시회를 볼 때 끝물에 가는 것 같다. 내가 간 이 날도 우연찮게 전시 마지막 날이었다.
이것 바로 전에 했던 "이응노와 마르코폴로의 시선"을 감명깊게 봤던 터라, 이번 전시도 기대를 하면서 친구까지 대동해 입장했다. 이 친구와 나는 전시기획 같은 것에 관심이 있어서, 작품의 예술성이나 느낌보다는 주로 전시의 구성이라든지 관람객 편의성 등에 중점을 두어 관람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나와 내 친구가 전시를 보면서 생각하고 공유했던 것들 몇가지를 적어보려 한다.




   대전광역시 이응노 미술관 2011.11.11.~2012.02.19.

▼ 전시에 관한 정보
http://ungnolee.daejeon.go.kr/ungnolee/exhibition/01/exhibition.01.001.board?aSeq=2263&x=25&y=16








   기초적인 정보 전달의 부재 - 전시 네임카드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당황케 했던 것은 네임카드였다. 분명 이 전시는 이응노와 문신 두 사람의 작품을 모아놓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누가 만든 작품인지 쓰여있지 않았다. 제목, 연도, 소재, 크기만 덜렁 적혀있었다. 이것 때문에 일일히 작품에 있는 사인을 보고 누구의 것인지 알아가며 감상해야 했다. 조소는 거의 문신의 것이 많았고, 그림은 대부분 이응노의 것이었던 것 같다. 사인이 보이지 않는 것은 추측을 해야만 했다. 우리 바로 뒤에 젊은 부부가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들도 누구의 작품인지 추측을 하는 듯했다. 우습게도 멀쩡히 '응노 리'라고 영어로 사인되어 있는 작품을 보면서 남편이 "이건 문신 작품인 것 같네 그치?" 하니까, 부인이 "응 그런 것 같아"라고 동의하는 것이다. 우린 그냥 웃고 말았다. 작가명을 기입하는 건 전시에서 기본 중에 기본 아닌가?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은 위에서 아래 사진의 경우다. 누구 작품인지 이름이 떡하니 크게 써있어서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작품의 제목은 오른쪽 아래에 코딱지만하게 써있었다. 오른쪽 아래 작은 글씨를 읽어보지 않고 겉으로 대충 봤을 때, 난 이 작품의 제목이 없는 줄 알았다. 보통은 제목을 크게 쓰고 이름은 오른쪽 아래에 쓰기 마련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네임카드를 저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신이 만들었다는게 중요해서 저렇게 작품 제목보다 크게 썼을까? 그렇다면 왜 다른 작품들은 작가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을까? 참 답답할 노릇이다.





   미흡한 작품 설명

   작품들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88올림픽을 기념하는 문신의 작품과 위의 사진으로 보이는 이응노 작품 설명 이외에는 못본 것 같다, 이 설명도 조금은 성의가 없다고 느껴졌던 것이, 이응노의 작품에 대한 위의 설명에서였다.(사진 오른편에 작품이 있었다) 율곡의 화석정과 신사임당의 사친을 상형화 하여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보통은 '아~ 이 사람이 율곡과 신사임당의 시에 매료되거나 감명을 받아서 저런 작품을 그려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들의 내용은 무엇일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 넓은 공간에 시들의 내용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설명에서도 정말 필요한 부분은 맨 아래 두 줄 뿐이다. 위에 한문과 한글로 나와있는 내용은 같은 뜻이다. 정말 넣어야만 했다면 한문은 뺐어도 상관이 없었다. 저 위에 있는 글이 이응노가 직접 쓴 것이라고 하더라도 왕창 집어넣을 것이 아니라, 작품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필요성에 맞게 적절히 들어가야 할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넓은 공간에 주욱 써놓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정말 궁금해 할 부분은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두 부분 외에는 이렇다 할 설명이 전연 없어서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심심하고 아리달쏭하게 느껴질 법한 전시였다. 나중에 전시를 다 보고 나와서 도록을 훑어보니, 작품들마다 담긴 이야기들이 있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라든지, 이 작품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인지, 다 나와있었다. 결국, 알고 싶으면 돈 내고 사라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들을 조금씩이나마 작품 옆에 설명을 달아줬더라면 관란객들이 좀 더 좋은 느낌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관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름 없는 네임카드 때문에 '저게 누구 작품이지?' 궁금해하고, 설명도 없고 무제가 대부분인 작품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그리고 만들었을까?' 아리달쏭해 할 수밖에 없다.

   전시는 작품을 보기 좋게 주욱 늘어놓는게 다가 아니다.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가 작품들을 모아놓고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의미있는 전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주제는 무엇인가. 전시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격동의 시대를 함께 산 이 두 예술가는 치열한 작가정신과 열정, 미지의 세계를 향한 충문한 도전정신 등 예술가적 기질 뿐 아니라 그들이 지나온 다이내믹한 삶의 궤적에서도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요소들과 두 작가의 인연이 이번 전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이번 전시를 통해서...그들이 이룩한 독자적 예술의 남다른 성취와 우리 미술의 발자취와 성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시의 기획의도, 큰 이야기가 관람객들에게 잘 전달되려면 작품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이야기의 전달 또한 중요하다. 설명에 휩쓸리지 않는 자유로운 미술감상을 위한 배려였다면, 도가 지나쳤다. 관람객들이 작품들을 보면서 이해를 못하는데, 그 두 작가의 "독자적 예술의 남다른 성취"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응노미술관의 이번 전시가 과연 전시의 기획 의도를 잘 충족시켰는가는 한번 되짚어봐야 하는 문제다.

(물론 이 모든 문제들은 안내단말기를 사용하며 전시를 둘러보고 도록을 구입하면 해결된다. 그러나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아야만, 도록값을 지불해야만 전시를 이해할 수 있다면 과연 좋은 전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맺음말

   생각보다 실망을 많이 하고 안타까움이 컸던 전시였다. 나와 내 친구는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전시를 맡은 학예연구사였더라면 어떻게 했었을까를 상상하며 관람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뭔가 더 기발한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재밌는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이응노미술관과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의 합작품인 "문신, 이응노의 아름다운 동행"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과연 다음 전시는 어떨런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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