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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완독했다! 중간에 연말에 여행을 다녀오느냐고 공백기가 있어서 그리 집중력 있게 읽진 못했지만(원래 쉬지 않고 한번에 집중해서 해치우는 성격인지라..), 어쨌거나 끝마쳤다. 상중하로 나누어진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재미를 잃지 않고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전적으로 미친글빨의 도스토예프스키 공이 컸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13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까라마조프家를 중심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므로 일일히 그 줄거리를 서술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 책의 하편 끝에 잘 요약되어 있다. 다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을 짤막하게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사실『죄와벌』의 애매모호한 결말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피소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인간이성의 편인지, 신에 대한 믿음의 편인지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이랬다. 작가가 결말을 내긴 내야 하겠는데, 라스꼴리니코프가 죄를 쉬이 뉘우치면 권선징악의 단순한 소설이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주인공의 편을 들어주자니 의도한 바가 아니거나 독자들 눈치 보기가 그렇고... 에라이~ 모르겠다! 하고 뜨뜻미지근하게 마무리 지은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스또예프스키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자 최후의 대작(역자曰)"이라고 하는『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기로 한 것이다.

   과연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죄와 벌』에서도 슬쩍슬쩍 나왔던 것들, 사회주의라든가 신과 인간의 문제, 러시아에 대한 애정(좋게 말하면 애정, 나쁘게 말하면 국수주의) 등이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죄와 벌』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이런 주제들에 관해 대놓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맡은 역할과 줄거리에서 독자들이 충분히 작가의 의도를 잡아낼 수 있게 하고 있다. 가령 신을 믿지 않고 한 평생 쾌락을 추구하는 아버지 표도르 빠블로비치 까라마조프, 역시나 "천상의 빵" 보다는 "지상의 빵"에 몰두하는 장남 드미뜨리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 무신론자인 둘째 이반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와 그의 사상에 물들어 살인을 저지른 하인 스메르쟈꼬프, 출세주의자로 그려지는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신학생 라끼찐, 이들 모두가 비극적인 파멸을 맞게 되는 것이다. 오만하고 거만한 소년으로 나오는 꼴랴 끄라소뜨낀도 자칭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알료샤에 의해 어설픈 모방에 지나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종종 나오는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극찬과 러시아가 아닌 다른 나라와 문화에 대한 은연한 비난은 작가가 어떠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알게 한다. 쉽고 극단적으로 말해서 작가는 사회주의를 증오하고 신의 편에 서 있는 러시아 국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소설 속에 잘 응축해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거의 유이하게 선한 역을 맡고 있는 인물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조시마 장로와 표도르 빠블로비치의 셋째 아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까라마조프(알료샤)이다. 조시마 장로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앞으로 까라마조프家에 벌어지게 될 비극적인 사건을 예언하는 인물이며, 알료샤는 그의 제자이다. 알료샤는 시종일관 착한 성격으로 소설 속 인물들 간의 중재자이자 심부름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내용분량과 소설 속에서 역할의 중요도를 본다면 사실상 소설의 주인공은 악역을 맡은 드미뜨리라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알료샤를 "우리의 주인공"이라 칭하고 있다. 알료샤는 소설전개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하지만, 토막토막의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중요한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선한 역을 맡고 있는 알료샤를 소설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옳은 것은 무엇인가'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물음에 은연중에 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알료샤가 소설의 전면에 나오는 경우가 딱 한 번 있는데, 그곳은 에피소드의 엔딩부분이다. 일류샤의 장례식에 소년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불안했던 것이다. 간접적으로 알료샤의 선한 역할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악역들이 너무 드러나다보니 멍청한 독자들은 오해할 소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했던 것이다.『죄와 벌』에서의 에피소드는 결말을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서의 에피소드는 마지막에 "우리의 주인공" 알료샤를 부각시켜 작품의 의도를 확실히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쓴 이 감상평은 이뽈리뜨 끼릴로비치 검사처럼 너무나 감상적이고 심리적인 분석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후감은 정답이 없고, 이곳은 내 개인적인 블로그이며 나는 이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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