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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러시아어를 딱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아무리 좋아해도 러시아어를 배우는 건 별로 상상하지 않았다. 원서로 읽고 싶은 마음은 간혹 들었으나, 영어로 된 셰익스피어의 작품도 원서로 사놓고 내팽개쳐버린 나이기에.. 러시아어로 된 원서는 당연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러시아어를 공부하겠단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ㅋㅋ


   발단은 아주 단순하다. "여행 준비를 위해서!" 17살 때부터 나의 숙원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고 유럽가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사실 어렸을 땐, 도선생도 몰랐고 러시아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내가 러시아에 대해 달 수 있었던 태그는 #맑스와 레닌의 고향, #10월 혁명, #추운 곳, #러일전쟁 #부동항 #아관파천.. 이 정도가 전부였다. 특별히 러시아와 관련해서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그냥 시베리아에 가보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부터 도선생을 만나고나서 빼쩨르부르크를 비롯한 그의 작품 배경이 되는 러시아 곳곳을 가고 싶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여행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러시아어를 공부할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세계 공통어인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웬만한 해외여행은 다 소화할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구글 번역기 실행해서 꾸역꾸역 어떻게든 뜻은 통한다. 나 또한 터키 여행 시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들 말을 못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면 다들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이 있기 때문에 웬만한 기본적인 대화는 영어로 소통 가능하지만, 교육 수준이 낮은 국가를 여행할 때는 ABCD도 모르기 때문에 답답함 그 자체이다.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를 여행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터키에서 이스탄불 같은 관광 도시를 제외한 곳에서는 정말 답이 없었다;;) 러시아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대략 터키와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만 여행할 게 아니기 때문에 러시아어 스킬 장착은 필수일 것이다.


   자, 그래서 야심차게 러시아어 독학을 시작했으니. 일단 App부터 깔아봤다. 앱의 이름은 "русский". 하루에 몇 단어씩 연습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그래! 이거야! 안녕하세요부터 배워보자! 하고.. 오디오를 실행했는데...



   순간, 숨이 들어마신 채로 턱! 하고 막히는 게 아닌가. 정말 거짓말 안하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장 처음 배울 때, 찍어보는 "Hello world". 세계 각국 언어를 가장 처음 배울 때 말한다는 안녕하세요, Hello, Bonjour, お は よ う ご ざ い ま す. 쉬워야 하는 게 당연하고 지당하며 지극히 정상이다! 근데 이 러시아어는 인사말부터 당최 따라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는 게 아닌가. 수준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정말로.. 영어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영어 감사합니다..ㅠㅠ) 러시아어 앱으로 오디오 계속 재생시키다가 팝송을 듣는데 영어가 그렇게 귀에 착착 감길 수가 없다. 이대로 수능 영어듣기평가를 다시 치룬다면 만점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붕괴 직전의 정신을 부여잡고,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알파벳부터 알아야 입 한번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검색 끝에 정말 좋은 블로그를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이곳이다 ☞ http://melburn119.tistory.com/403 러시아 글자는 "키릴자모"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본어 글자를 히라가나라고 하는 것처럼. 유투브에 올려진 박소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놀라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단 진정할 수 있었다;;; 역시 언어는 글자부터 배워야 하나보다. 근데 이 글자 하나하나 생김새와 발음도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래도 한 가지, 아니 두 가지 위안이 되는 건, 대문자와 소문자가 같다는 점과 소리 글자라는 점이다. 그 점에 깊이 감사하며(;;;) 이제 틈날 때마다 러시아어 공부에 매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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