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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의 꿈』을 읽고나서 도선생의 중기 작품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 때문에, 이 또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 여기고 읽어나갔다. 물론 예상대로 가볍긴 했으나 결코 가볍게 읽히진 않았다. 왜냐, 읽는 내내 열이 받쳐서 책을 내팽개치는 바람에 좀처럼 진도를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재밌는 표현이 있는데, "발암 물질"에 대응해서 '발암 XX'라는 표현이 있다. 어떤 대상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암에 걸려 죽을 것만 같을 때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그와 관련하여 이 소설을 표현하자면, 가히 '발암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암에 걸려 죽지 않기 위해 난 일부러라도 이 소설을 읽을 때 최대한 몰입을 피하면서 읽으려 노력했다. 이 소설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내 마음을 백 번 이해할 것이다.


   대략적인 내용을 딱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너무나 착해서 병신 같은 예고르 일리치 로스따네프 대령이 노망한 어머니와 무식한 게 입만 살아있는 간사한 포마 포미치를 자신의 집에 상전처럼 모시고 살아가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대령의 조카인 세료쟈가 화자가 되어 서술하고 있다.


   이야기는 포마 포미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그가 신이고 곧 권력이다. 마치 사이비 교주처럼 멍청한 신도들을 지배한다. 그가 교묘한 건지, 신도들이 멍청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기서 충격을 주는 건, 그 포마 포미치가 높은 신분의 사람도 아니고 진정 똑똑한 학자도 아니며, 그저 광대 출신의 버러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야기의 주된 장소는 대령의 저택이고 그가 제일 높은 신분에 위치해 있으며 등장 인물들 또한 그의 가족들과 그가 거느리고 있는 농노들이지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 사실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대령이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는 식객 포마 포미치다. 모든 갈등과 갈등의 해소는 모두 포마 포미치로부터 비롯된다. 이 '발암 소설'의 '발암 물질'은 바로 이 포마 포미치라 할 수 있다. -_-.. 화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책을 놓지 못했던 이유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 전개와 너무나 궁금한 결말 때문이었다. 결말은 생각보다 김빠지는 결말이었지만, 끝까지 책을 놓지 않게끔 해줬다는 것에 감사하다. ㅋㅋ


   도선생의 미친 필력이 조금씩 시동을 걸까 말까 하는 이런 걸 읽고있자면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진다. 키스만 하고 헤어져야만 할 때 드는 아쉬움 같은 느낌. 비유가 좀 이상한가;; 아, 아무튼 그렇다. -_-;; 아 언제쯤 다시 읽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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