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책리뷰를 쓴다. 그동안 책을 계속 읽긴 했으나 왠지 모르게 블로그에 손이 가지 않았다. 간만에 올리는 리뷰는 그 유명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이다. 맨부커 상을 받았다고 해서 한동안 언론에서 떠들썩했었다. 사실 그래서 읽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을 받았거나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들은 왠지 모르게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딱 하나다. "나의 외사친"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의 외딴 마을에 사는 어떤 외국인이 한국의 한강을 안다며 채식주의자를 읽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언급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데, 정작 한국인인 내가 거기에 공감할 수 없음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오랜만에 들른 오프라인 서점에서 망설임없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골랐고, 작고 ..
러시아 여행을 앞두고 가이드북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미술사에 관심은 높지만 여지껏 보아왔던 서양미술사 관련한 책들에서는 러시아 미술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전무하다시피여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뻬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에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는 정보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미술사를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의무감보다는 '기껏해야 변변찮은 종교회화가 걸려있거나, 수집하거나 약탈한 서유럽 화가들의 작품들이 즐비하겠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한 마디로 그냥 무시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와 리뷰들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속는 셈치고 읽어보자 하고 펼쳐든 책에서 기대 이상의 놀라움과 감명을 받았다. 러시아는 문학과 음악은 뛰어나지만 미술은 그닥 ..
무려 2년 반 전에 구입했던 책을(http://zero-gravity.tistory.com/201) 이제야 펼쳐봤다. 두껍고 진득거려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이런 종류의 책은 명절 연휴에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추석 연휴는 지루하고/머리 아프고/글자들을 삼키기가 버겁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야할 혹은 읽고나면 뿌듯할 것 같은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작년 추석 연휴에는 집에 서버를 구축하느라 기를 다 빨렸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작년엔 뭐했는지 기억이 안나네;;;)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총 6일, 하루에 1.6권을 읽는다는 계획으로 읽어나갔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4일 반나절에 끝낼 수 있었다. 역시 천병희 씨가 번역한 책은 최고다 ㅠㅠ 어렸을 때, 더럽게 어려워서..
도스또옙스끼가 좋아한 러시아 작가가 두 명 있다. 뿌쉬낀과 고골. 이 사람들의 작품이 그의 소설에 여러번 인용된 적이 있어서, 언젠가는 한번 이들 작품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둘중에선 고골의 작품을 먼저 읽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 전집에는 뿌쉬낀의 작품밖에 없었기에 먼저 손을 댄 것이 『예브게니 오네긴』이다. 중심 주제는 오네긴과 따찌야나 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오네긴-따지야나, 렌스끼(오네긴의 친구인 시인)-올가(따지야나의 친동생) 이렇게 짝지어진다. 렌스끼로 통해 표현되는 짙은 낭만주의 색채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고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어찌보면 구닥다리 같기도 하지만 구식 표현이라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멋진 글들이 많다. 운문소설이라는 ..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약한 마음뽈준꼬프정직한 도둑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백야꼬마영웅 7개의 중단편 모음집이다. 낭만적이지만 촌스럽게 격정적이지 않고, 도선생답지 않은 부드러움이 흐르지만 날카로운 시선 또한 언뜻 보인다. 뭔가 기존의 도선생 작품들에서 느꼈던 음침함과는 대비되는 작품들로 구성돼있다. 이들 7개 작품중에 내가 생각하는 도선생다운 작품을 꼽자면 「약한 마음」, 「뽈준꼬프」, 「정직한 도둑」,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이다. 물론 그가 쓴 작품들이기에 그답지 않은 작품이 어디있겠냐만은, 7개 작품들 중에 그나마 어둡고 더러운 느낌을 받은 작품을 꼽아보면 저정도 되겠다. 대체로 사랑 얘기가 많았고,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불륜&삼각관계 모음집"이었다. 도선생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푸..
아, 카뮈! 그의 작품을 읽고있노라면, 라울 뒤피의 화사하면서도 아련한 그림들이 떠오른다. 장면과 인물에 대한 시각적인 묘사를 눈으로 따라가다보면 주인공의 인생이 수채화 물감으로 붓질하듯 번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이전 작품들의 아름다운 필체에서도 느꼈지만, 정말 카뮈는 진정 '인생을 사랑'한 작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바탕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고민"은 아니다. "생각"이라고 해야 한다.-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文과 哲을 잘 버무리고 세련되기까지 한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도스또옙스끼와 카뮈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예기치 않게 마지막 작품이 된 『최초의 인간』이란 작품의 감상평을 하기에 앞서, 잠시 내가 그토록 좋아해 마지않는-그래, 나는 도빠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