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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다, 두껍다, 무겁다, 비싸다." 외형적으로 이 책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말이다. 난 어쩌다가 이 미친 전공서적 같은 책을 구입하게 됐을까. 때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학부 마지막 학기의 학점을 "일반선택"으로 채워야 했기에 교양은 들을 수 없었다. 전공과목은 이미 들었던 수업들이었고, 결국 타과 전공수업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눈의 띈 수업이 미술교육과의 "서양미술사" 강의였다. 내가 그 수업을 선택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서양미술사 공부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08년 초에 국비지원을 받아서 유럽여행을 갔다온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서양미술사에 대한 내 무식함에 통감했던 것이다. 그 강의의 교재가 바로 이 책이었다. 주머니가 여의치 않았지만, 제대로 공부해보겠다는 열정에 불타있었기에 3만 얼마를 척! 내고 구입했었다. 그나마 보급판으로 겉표지만 바꿔서 나왔기에 조금 싼 것이었다.(예전 것은 양장본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영어제목에서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무려 History of Art의 "축약본"이다 ㄷㄷ)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 했던가. 갑자기 인턴이 되면서 수업을 두어번 듣고 취업계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강의했던 선생님께서 내가 사학과생이라는 것만으로 굉장히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다;; 나도 듣고 싶었던 수업을 못들었던 게 정말 안타까웠다. 그렇게 책만 사놓고 몇 년이 흘렀다.


   항상 책꽂이에 있는 이 책을 보고 '봐야지.. 언젠가는 봐야지..' 생각만 했었다. 아니, 사실 딱 한번 완독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지루하지는 않았는데, 중세까지 보다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 땐 예술가들과 작품들을 모조리 외우려 했고, 궁금증이 가지를 치고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비싼 책을 사놓으면 아까워서라도 정말로 언젠가는 완독하게 되어있다. 이번에 읽을 땐 완독을 위해 욕심을 버렸다. 마음은 조금 불편했지만, 흐름에 따라 죽죽 읽어나가니 4~5일만에 끝낼 수 있었다. "서양미술사"라는 방대한 주제를 이 책 한권으로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읽으면 절대 완독할 수 없다. 궁금증에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읽다가는 두꺼운 책에 질려버리기 십상이다. 책이 두껍긴 해도 워낙 주제가 방대하다보니 각 시대마다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작가와 작품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읽을수록 부족함을 느끼겠지만, 파고들지 말고 일단은 끝까지 읽어보도록 하자. 이 책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The Social History of Art』와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서양미술사의 명저이고, 최고의 입문서라고 할 만 하다. "입문"한다는 생각으로 읽어야지 이 책 하나로 모든 걸 뽕뽑겠다는 생각으로 읽었다간 골치 아프다.


   입문서라고 하기엔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조금만 노력하면-그렇다. 이 책은 "조금의 노력"이 필요하다;;-나같은 비전공자도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서양미술"史"인만큼 서양사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은 필수적이다. 목차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서양사의 바탕 위에서 회화, 조각, 건축 등 예술의 각 분야에 대해 서술하였다. 서문에는 전체적인 미술감상의 포인트 같은 것을 제시하였고, 큰 목차들 앞에는 시대배경을 설명하였다.


   미술의 역사라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술품을 나열해 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그 자체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서 인간들이 영위했던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증거를 기록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역사'라는 개념을 고려해야 하는데... (제1부 고대세계 앞부분 38쪽)

내용에 있어서 각 시대의 미술가와 작품들이 띄엄띄엄 섬처럼 서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미술가들끼리 주고받은 영향 등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원인과 결과로 이어진다. 따라서 초반의 집중력만 유지하도록 노력하면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서양미술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안목을 키우는 데에 이만한 책은 드물지 않을까 한다. 나같은 경우, 이 책을 읽으면서 유럽여행을 다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 로마의 바티칸궁 등에서 봤던 수많은 회화와 조각작품들에서 왜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가. 교회건축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그들의 현란한 붓질과 장엄함에 그저 감탄만 했을 뿐이었다. 책에 수록된 작품들의 감상을 따라가면서 탄식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다시 보니 달리보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나서 유럽여행에서 생겼던 그들 문화에 대한 궁금증,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궁금증이란 "어떻게 해서 그들은 전통을 revival하면서 유지,보존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이민족or야만인'으로 침략,정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로마의 후예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였다. 유럽여행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이 궁금증의 전자에 해당하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이어짐'이었다. 왜 우리나라는 현재의 일상에서 과거를 느낄만한 것들이 극히 드문 것일까. 그것은 일제를 거친 왜곡된 근대를 강제이식 당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경험과 해방이후 새마을운동과 산업화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비교했을 때 그들의 '일상의 전통'이 그토록 부러웠었다. 책에도 나왔지만 아마도 그들의 '과거로의 집착'은 선진 그리스-로마 문화예술을 향한 선망 때문이었고, 궁금증 후자의 경우도 그와 관련하여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먼저 보고 더 많이 서양미술사 관련 서적들을 섭렵한 후에 유럽여행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유럽여행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길 권한다. 그리고 이 책을 강력추천한다.

   하나 아쉬운 점은, 도판 중에 흑백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모두 컬러로 인쇄했다면 단가는 좀 올라갔겠지만 작품을 보는 데에는 더 좋았을 것이다. 몇몇의 경우 색채를 상상하기가 불편했다. 그 외엔 굿이다.




하아~ 유럽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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