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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2년 반 전에 구입했던 책을(http://zero-gravity.tistory.com/201) 이제야 펼쳐봤다. 두껍고 진득거려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이런 종류의 책은 명절 연휴에 읽는 것이 좋다. 특히 추석 연휴는 지루하고/머리 아프고/글자들을 삼키기가 버겁지만 언젠가는 꼭 읽어야할 혹은 읽고나면 뿌듯할 것 같은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작년 추석 연휴에는 집에 서버를 구축하느라 기를 다 빨렸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재작년엔 뭐했는지 기억이 안나네;;;)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총 6일, 하루에 1.6권을 읽는다는 계획으로 읽어나갔는데, 생각보다 쉽게 읽혀서 4일 반나절에 끝낼 수 있었다. 역시 천병희 씨가 번역한 책은 최고다 ㅠㅠ 어렸을 때, 더럽게 어려워서 집어던졌던 걸 떠올리면 감격도 이런 감격이 없다. 심지어 음주 후에도 읽었을 정도로 어렵지 않았다. 이 블로그 글을 보면☞<국가>, 두 국가. 박종현 씨가 옮긴 것과 천병희 씨가 옮긴 것을 잘 비교해놓았는데, 역시나 내가 어렸을 때 박종현 씨가 번역한 책을 읽다가 집어던진 것은 내 머리가 작아서가 아니라 번역이 어려웠음을 알 수 있다. 박종현 씨가 번역한 것은 지금봐도 개어렵다. 개인적으로는 '번역의 치밀함을 떠나서 일단 책이 읽혀야 하지 않겠나. 철학은 문학이 아니니까 뜻과 의미 전달만 되면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쉽게 읽힌다고 해도 철학은 철학인지라 처음에 문답으로 물고 늘어지는 플라톤의 문체에 적응하는 게 조금 뻑뻑했다. 제3권쯤 넘어가면 적응이 돼서 읽는 속도가 붙는데, 7권까지는 플라톤이 설정했던 이상적인 정체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게 이어진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하는 플라톤의 얘기를 직접 들으니 흥미진진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던 혹은 다른 철학자들의 책을 통해 들었던 플라톤의 사상보다, 직접 플라톤이 썼던 책을 읽는 게 훨씬 더 즐거웠다.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요약된 내용들을 원전을 읽으면 전체를 풀어서 왜 이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인지 인과관계까지 모조리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재밌긴 해도 7권을 넘어가면 슬슬 이 밑도 끝도 없는 삼단논법에 지쳐가는데, 그야말로 묻지마 삼단논법의 절정을 보여주신다.(물론 문답으로 진행되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ㅋㅋㅋ) 소크라테스가 "A는 B이고 B는 C이니, A는 C이니라. 그러니 닥치고 A는 C이니라 알겠느냐." 하면 제자들은 "그렇고 말고요", "옳은 말씀이에요", "제우스에 맹세코, 그야 물론이지요."하고 딸랑딸랑한다.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은 플라톤의 생각이고,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소크라테스 말의 방향과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만 한다. 워낙에 삼단논법의 연속이다보니 그 고리를 끊고 반박을 하기가 골치아픈 구조다.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플라톤은 이렇게 생각했구나'하고 편하게 읽는 게 상책이다. 


   이렇게 이번 연휴에도 책 한권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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