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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8. 2, 토. CMB 엑스포 아트홀에서 데니스 홍의 강연이 있었다.


   내가 데니스 홍을 처음 알았던 건 1년 전 KBS의 두드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다.


   비록 TV프로그램이었지만 보면서 '아 정말 이 사람은 나랑 코드가 맞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TV 강연을 보고 감명도 받아서, 이 사람이 만들어서 무료 공개 배포했다는 DARwIn OP도 찾아보고 로봇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관심의 끈은 짧았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이번에 대전에서 하는 로봇융합페스티벌에 초청 강연이 있다길래 부푼 마음을 안고 참석했다.


   객석에는 현장체험학습 숙제하러 온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부모들이었다. 따로 관심있어서 참석한 사람은 나랑 날 따라온 내 동생 뿐인 것 같았다.  





   강연 내용의 대부분은 데니스 홍이 연구개발한 로봇들에 대한 소개와 로봇들을 제작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미래 과학 꿈나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였다. 약 한 시간 동안 들었던 강연 내용 중에 마음 속 깊이 와닿았던 말을 적어보자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다른 시각으로 보라",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순간에 처할 때는,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를 생각해보라"


   생각의 전환과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간학문적 접근, 눈앞의 이익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다.






   어렸을 때부터 생물학을 좋아하고 그것을 로봇 공학에 접목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위와 같은 아메바 로봇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연에서 데니스 홍이 말하기를, 자신은 원래 로봇을 만들려고 시작했던 게 아니라 생물학과 인체의 물리학에 관심이 있었고 로봇도 그렇게 시작했다고 한다. 기실 인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지 않았다면 직립보행하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드웨어를 만들어놓고 소프트웨어를 입히는 게 아니라, 동작하는 방식인 소프트웨어를 구상하고 하드웨어를 어떻게 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라"는 말은, 이 사람이 로봇을 연구개발해왔던 방식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 하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엑스포 아트홀 옆 DDC에서 진행했던 각종 로봇대회들은 좀 한심해보였다. 어린 애들이 데니스 홍처럼 엄청나게 잘 만들길 기대하는 것도 아니며, 사실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똑같은 과학 상자를 구입해서 똑같은 부품으로 똑같은 설명서를 보며 똑같은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의 수준과 현실이 아직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하는 게 절설히 느껴졌다. 완제품처럼 뚝딱 나오지 않아서 제대로 작동이 안되더라도,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조립해서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돌이켜보면 부모님께 참 감사하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어머니가 과학 상자는 교육상 별로 좋지 않다고 사주지 않으셨는데,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토록 좋아했던 레고도 완제품으로는 절대 사주지 않으셨다. 내게 주어줬던 것은 설명서도 없이 이것저것 섞여있는 레고 뭉텅이와 판떼기 3개가 전부였다. 그걸 가지고 내키는 대로 여러가지 모양을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지막에 데니스 홍이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한테만 선물을 준다고 했는데, 아이들이 벌떼처럼 앞에 몰려들었다.


   사실 난 강연 내용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맞추는 사람에게 줄줄 알았다.


   질문은 "로봇은 OOOOOO이다."의 동그라미를 자유롭게 채워서 답하는 것이었다. 알게 모르게 나 또한 "문제-답"에 익숙해져있었던 것이다.(프로그래밍 직업병인가;;) 내심 조금 부끄러웠다. 





   강연을 마치고는 사인회가 이어졌다.


   이때 주최측의 행사 진행이 정말 많이 실망스러웠다. 여기서 대반전 ㅡㅡ...


   난 사인을 지갑에 받고 싶었다. 나눠주는 종이 쪼가리에 받았다가는 나중에 잃어버릴 것 같았고, 항상 갖고다니는 지갑에 사인을 받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내내 줄 서서 기다리다가 받으려고 다가가는 순간, 행사 진행 요원이 나를 제재했다. "나눠드린 종이 외에는 사인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정말 어이가 없었고 분노가 치솟았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다른 시각으로 보라"는 데니스 홍의 강연에서 나눠준 종이 외에는 사인을 받을 수 없다니?!


   결국 항의해서 사인을 받긴 했지만, 이미 기분은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나중에 동생을 통해서 알아보니(동생의 대학 동기가 그 행사 진행 요원 중 하나였다. 세상 참 좁다.) 행사 진행이 완전 개판이었다.


   인터넷 검색해서 이 분의 글을 보니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estkarts&logNo=220080342796 더 기가차더라...


   썩은 그릇에 금은보화를 담으려니 참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달까...



   강연만큼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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