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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의 나이가 올해로 서른이 되었다. 캐논 A-1 기종은 1978년 4월부터 생산돼서 30년도 더 됐지만, 이 녀석의 나이만 따지면 올해가 30주년이다.


   물론 이 오래된 카메라를 내가 직접 구입한 것은 아니다. 때는 30년 전 사우디아라비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동에서 일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귀국할 때 흔하게 사왔던 물건이 일제 카메라였고, 특히 이 canon A-1을 많이 사왔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태어날 때의 모습부터 중고등학교 때의 모습까지 어릴 적 사진은 모두 이 녀석으로 찍혀서 앨범에 담겨있다.


   비싼 카메라였기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진 손도 대지 못하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아버지에게 허락을 맡고 슬금슬금 빌리곤 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완전히 내 카메라가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 장농에서 몰래 한 롤씩 야금야금 훔쳐쓰던 코닥컬러플러스400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 때는 사진 찍는 취미가 전국민의 취미가 되기 전이었기에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녔던 나는 결과물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음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사진을 잘 찍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곤 했다. 학교에서 소풍이나 수학 여행을 가는 일이 있을 때면 여기저기 찍어달라는 부름에 끌려가곤(;;) 했는데, 이 때만큼 당황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왜냐면 보통 카메라를 들고 오는 친구는 반에서 몇 명 되지 않았는데 대개는 자동 카메라였기 때문이다. 캐논 a-1 같은 쇳덩어리 수동 카메라만 써보다가 난생처음 플라스틱 자동 카메라를 만져보니 너무나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에이원에 익숙해 있었고, DLSR이 생기기 전까지 에이원은 나의 주력 바디였다. 그러나 디지털 사진에 눈을 뜨면서부터는 점점 사용빈도가 떨어지다가 결국에는 방치해두고 말았다. 가끔식 청소와 곰팡이 방지 일광욕도 해주긴 했지만, 최근 1~2년 동안은 그냥 쳐박아놨었다.



   문득 옛 생각이 나서 꺼내보았는데,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녀석은 나의 무관심 때문에 렌즈에 물방울이 생겨 울상을 짓고 있었다. 더이상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곰팡이가 "안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a850이 망가지면 마음이 많이 아프겠지만, 이 녀석이 망가지면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 것 같았다. 사용도가 떨어져도 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3만원을 들여 렌즈 청소를 맡겼다. 직접 분해해서 청소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소중한 이 녀석을 내가 어찌 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래버를 돌리고 셔터를 누르면 여전히 경쾌한 셔터음이 나를 설레게 한다. 다른 필름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이 내 카메라의 셔터음을 듣고 "뭐 이런 소리가 있냐"며 놀라워하곤 했었다. 대체로 터프하다는 반응이었다.


   난 이 셔터음을 무지 좋아한다. a850의 셔터음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 녀석과 닮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다른 기종들의 가냘프고 정숙한 셔터음이 부럽기도 했지만, 터프하고 날카로운 셔터음에 익숙해진 후에는 다른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출시 당시 에이원의 홍보 포스터들을 보면 셔터음과 디자인을 의식한 꽤나 남성적인 느낌으로 어필했던 것 같다.


   A-1은 캐논의 A시리즈 중에 제일 좋은 기종이었고(최고급기로는 F-1n이 있었다), 중급기 라인으로는 가장 좋은 카메라였다. 가격은 바디+렌즈(FD50mm 1.4SSC) 114,000엔, 바디만은 83,000엔이었다.


     ↓캐논의 A시리즈↓ (일본 웹사이트를 참고)

출시연도 

기종 이름

출시가격 (body 가격만)

AE(Automatic Exposure) 모드 

1976. 04

 AE-1

50,000¥

셔터 우선 

1976. 12

AT-1

일본에서의 수출전용

없음. 매뉴얼만.

1978. 04

A-1

 83,000¥

조리개 우선, 셔터 우선,

프로그램 

 1979. 05

 AV-1

 40,000¥

조리개 우선 

 1981. 04

 AE-1P

 60,000¥

셔터 우선, 프로그램 

 1982. 03

 AL-1

58,000¥ 

조리개 우선, 포커스 에이드(초점이 맞으면 불이 켜짐)


   비싼 가격만큼이나 당시로썬 엄청난 기술의 탑재로 "카메라 로봇"이라고 불리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조리개 우선 모드"와 "셔터 우선 모드"를 동시에 탑재한 카메라는 1977년에 출시한 미놀타XD가 최초였지만, 이 녀석이 등장했을 때만큼 시끌시끌하진 않았다고 한다. 에이원은 셔터 우선 모드(TV), 조리개 우선 모드(AV), 프로그램 모드(P), 스톱다운 모드, 스트로보 모드, 메뉴얼 모드(M) 등 총 5가지 모드를 제공했으니 가히 "카메라 로봇"이라 불릴 만 했다. 지금의 카메라와 비교하면 우습지만, 그 땐 그야말로 끝내주는 기능이었다.


   이 중 프로그램 모드는 조리개 값과 셔터 값을 카메라가 자동으로 잡아주는 기능인데, 전에 없던 이 모드의 탑재는 "초보자용"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켜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의 거부감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보급형 DSLR의 모드 다이얼에 있는 사람 모양, 꽃 모양에 거부감이 있듯이 그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캐논 A-1의 제원↓ (설명서 참고)

형식

포컬 플레인 셔터의 전자제어 AE / 35mm SLR 카메라

마운트

캐논 브리치-록 마운트.캐논 FD, FL 그리고 R 렌즈 사용가능

뷰파인더

고정 eye-level 펜타프리즘

시야율

수직 93.4% / 수평 95.3%

확대율

50mm 표준렌즈 사용시 1 : 0.86

미러

진동흡수 방식의 즉시 복귀 반사 거울

AE모드

P, A, S, M, Stop-down, 플래시

측광방식

TTL(Through The-Lens) 중앙중점 개방 측광

측광범위

-2EV 18EV

노출보정

±2EV, 1/3단계

노출고정버튼

있음(누르고 있는 동안만 유효)

심도미리보기

있음

다중노출래버

횟수 제한 없음

파인더 셔터

있음

셔터

전자제어/4축의 천 포컬 플레인 셔터

셔터 속도

B, 301/1000(AT 다이얼 방식)

셔터릴리즈

버튼타입, 마그네틱 릴리즈 스위치

X 접점

1/60

셀프타이머

2, 10

전원

4LR44(알카라인), 2CR 1/3N(리튬이온)

필름감기레버

싱글스트로크 120° 예비각 30°

필름카운터

뒷 덮개 열 때 자동 리셋, S 38, 필름 되감을 때 수치 감소

필름감도

6 12800(1/3 간격)

크기

141 x 92 x 48 mm

무게

620g

생산년도

1978. 4- 1986

생산대수

250만대

가격

114,000 yen (기본렌즈 FD 50mm f/1.4SSC 포함 가격)


   더군다나 이 녀석은 전자식 카메라다. 보통 기계식 카메라의 경우 바늘이 움직이면서 노출 정보를 가리키는 반면, 전자식인 에이원은 노출 정보를 빨간색 숫자로 하단에 바로 표시해준다. 하지만 건전지가 없으면 셔터조차 눌리지 않아서 "건전지가 없으면 그냥 상자에 불과하다"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지금이야 배터리 없는 카메라를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전자식 카메라가 갓 나오던 그 당시에는 건전지에 의존하는 카메라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건전지 소모량도 의외로 커서 호불호가 갈렸다고 한다. 내 경험으로는 건전지를 1~2년에 한번씩 교체했는데, 참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아마 더 귀찮았을 것이다. 내 경우는 교체 주기를 떠나서 필름값도 버거운데 1개에 5천원씩 하는 건전지값도 싫었고, 갑작스런 건전지 사망에 중요한 순간을 놓칠 때는 더더욱 싫었다. 그리고 그럴 땐 기계식 카메라가 참 부러웠었다. 하지만 그것은 편리함을 얻는 대가인 어쩔 수 없는 전자식 카메라의 숙명인 것이다.



   니콘이 F마운트를 계승했듯이 캐논도 FD마운트를 이어받았더라면, 서비스 태도와 AF문제 때문에 조금 고민을 했겠지만 아마도 지금 내 DSLR은 캐논일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디지털 바디에 MF렌즈만이라도 계속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렌즈 청소 후에 오랜만에 필름을 사서 껴줬다.


   저 켄트미어 필름은 작년에 나온 영국산 흑백필름이라고 한다. 요즘 세상에 신제품 필름, 그것도 중국산이 아닌 영국산 흑백필름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대책 없이 질러버렸다. 마땅히 작업할 암실과 약품도 없으니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고 서울로 보내 현상을 맡겨야 한다. 


   그래도 찍을 때만큼은 두근두근거린다.

   오랜만의 흑백필름 촬영,, 결과물이 어떻게 나와줄지 설렘 반 걱정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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